척화비(斥和碑) 다시 세우는 우(愚)는 없어야

- 임금의 노여움과 장수의 분노로 싸워선 안 돼
- 구한말 척화비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길...

 

대구 중심가에 있는 반월당역 바로 지근인 남산동에는 천주교 성지의 하나인 관덕정이 있다. 관덕정에는 100년 이상에 걸쳐 땅속에 잠들어 있었던 척화비를, 인근의 쇼핑센터 건립시 터파기 하면서 발견하고 수습하여 현재 건물의 입구에 세워두고 있다.

척화비에는 "洋夷侵犯(양이침범) 非戰則和(비전즉화) 主和賣國(주화매국)"이라 적혀 있다. 척화비는 병인양요에서 양헌수가 정족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신미양요에서 미국의 제너럴셔먼호를 대동강에서 불태워 버린 후에 쇄국정책을 통한 왕권 강화를 위해 대원군이 1871년에 전국 각지에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위해 척화비를 세운지 얼마지 않은 1875년에 운요호(雲揚號) 사건이 일어나고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조선왕조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갔고 국토는 피폐해져 갔다. 물론 수많은 백성이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질병 등으로 죽어갔다.

1894년에는 우금치 전투에서 신식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구식무기 및 죽창으로 무장한 2만의 동학군이 마치 학살을 당하듯이 죽어갔다.

 

 

그 당시의 조정은 세계정세의 변화를 거의 깨치지 못하고 정저지와(井中之蛙) 같이 국정을 운영하였다. 물론 재정도 탕진하여 국고는 텅텅 빈듯하였다. 또 조정은 백성에게 올바른 국제 정세의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감정적 선동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 많은 백성들은 굶주림과 가난, 질병 등으로 고향을 등지고 물설고 낯설은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떠났다.

 

조선의 왕인 고종은 대한제국을 칭하고 스스로 초대 황제가 되었지만, 제국주의의 열강은 고종 황제를 이용하여 이 땅의 자원을 수탈하였다. 하지만 일부 왕족들은 제국주의의 열강에 금광 채굴권 등을 팔아넘기는 부역을 하고 돈을 챙겼다. 이들 왕족들은 백성을 보살피기 보다는 자신의 위신을 세우고 일신을 편안하게 하는데 더 혈안이었다. 그 당시에 아주 귀하였던 서양의 커피 등의 기호식품을 즐기는 등 일반 백성의 삶과는 동떨어진 나날을 보냈다. 

나라는 망해갔고, 1910년에 일본에 합방되어 36년간의 치가 떨리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식민통치를 겪었다. 물론 일제 식민통치에서도 조선의 왕족들은 황족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백성은 나라잃은 고통속에서 신음해야했다.

 

근간 우리나라 주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비추어 볼 때에, 양산에 내려가 있는 지도자와 몇몇 그리고 상당한 책임이 있는 자가 척화비를 세우지는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지도자와 상당한 책임이 있는 자가 '죽창가' 운운하며 반일하지 않는 것은 “친일에 매국이다”고 하였는데, 국제정세의 냉혹함을 사실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

 

손자의 화공편에는 “主不可以怒而興師(주불가이노이흥사) 將不可以慍而致戰(장불가이온이치전) 合於利而動(합어이이동) 不合於利而止(불합어이이지)「임금은 노여움으로써 군대를 일으키지 않아야하고, 장수는 분노로써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이득이 있다면 움직이고 이득이 없다면 멈춰야한다」”는 말이 나온다. 당시의 지도자와 그리고 상당한 책임이 있는 자는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죽창가에 반일하지 않는 것은 매국이라 하며 스스로 조금의 이득도 없는 척화비를 세우고 말았다. 자신들의 왕권 강화를 위한 척화비를 세운 대원군이 되는 우(愚)를 또 다시 범했던 것이다.

이제는 척화비를 세우는 것과 같은 우를 누군가가 다시는 범하지 못하도록 우리 국민들은 경계하고 감시해야 한다.

 

 

척화비가 나라를 번성하게 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면 가가호호(家家戶戶) 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척화비는 하나의 돌덩이에 불과하다.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이다.

한비자에 “存亡在虛實(존망재허실) 不在於重科(부재어중과)「국가의 존망은 국정의 허실에 달린 것이지 국민의 중과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듯이, 신식무기의 일본군에 당한 우금치에서의 학살을 또 다시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적 명분이 아닌 이성적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척화비에는 자손만대에 경계한다고 적혀있는데, 새로운 정부의 지도자와 그리고 상당한 책임이 있는 자는 구한말 척화비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 국민을 굶주림과 가난의 구렁텅이로 다시는 몰아넣지 않아야 한다.

 

深 · 思 · 翁 (심사옹)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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