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간판 아나운서 리춘히, '2중 노력영웅' 됐다…최고대우

- 김정일 집권기 이어 이번에 또 노력영웅 칭호
- "주체적 방송이론으로 튼튼 무장" 홍보
- 김정은, 보통강변 위치한 고급 주택 선물로 주기도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중요 계기마다 이를 대내외에 보도해온 간판 아나운서 리춘히가 최고 영예인 '2중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조선중앙통신은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기념일을 맞으며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 김기룡 동지와 책임방송원 리춘히 동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력영웅칭호가 수여됐다"고 전했다.

통신은 리춘히 등이 "우리 당의 주체적인 방송이론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높은 실력과 독특한 화술형상으로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당정책 관철로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소개했다.

리춘히는 김정일 집권 시절이던 2008년 이전에 이미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만큼 이번 포상으로 2중 노력영웅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북한에서 노력영웅 칭호를 두 차례 받는 2중 노력영웅은 흔치 않아 특출한 공로를 세우지 않는 이상 고위급 간부들도 누리기 어려운 위상이다.

리춘히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체제 전 과정에서 북한 최고의 간판 아나운서로, '최고지도자의 입' 역할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리춘히는 지난 3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비롯해 수차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열병식 등 중대 발표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해 격하고 근엄한 어조로 북한 입장을 알리곤 했다.

최고지도자의 대내외 활동 보도는 대부분 그의 입에서 시작됐고, 김일성·김정일 사망 사실을 공개할 때에는 오열을 참는 모습으로 대내외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올해 79세인 리춘히는 1971년 아나운서에 데뷔한 이후 3대에 걸쳐 최고지도자의 신임과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지난 4월 김정은으로부터 평양 보통강 강변에 새로 조성된 복층 구조의 고급 테라스식 주택을 선물 받기도 했다.

이 주택단지는 김일성이 1970년대 주석궁(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옮기기 전까지 살던 '5호댁 관저'가 있던 자리로 평양내에서도 명당 중 명당으로 손꼽혀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당시 김정은은 "꽃나이 처녀 시절부터 50여 년간 당이 안겨준 혁명의 마이크와 함께 고결한 삶을 수놓아온 리춘히 방송원과 같은 나라의 보배들을 위해서라면 아까울 것이 없다"고 치켜세웠다. 리춘히는 이미 '김일성상' 과 '인민방송원' 등 북한 당국이 주는 최고의 칭호와 최고지도자의 표창을 모조리 휩쓸었다.

 

김 · 성 · 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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