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의 심연(深淵)] 서로 상대방 입장을 모르는 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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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분단구조 근원(根源)과 종식(終息)은?
- 일본보다 한국 내부의 대립(對立) 심각
- 문명사(文明史)의 시점에서 한-일관계를 생각하다

 

국내외 언론이 한일 양국의 갈등을 전하고 있다. 언론이 쏟아내는 보도의 홍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갈등은, 저항하기 어렵고 바꿀 수 없는 대결구도로 느껴질 것이다.

더욱이 거대 언론의 선동보도로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무서운 정변을 겪은 한국인들로서는, 한일 양국 언론의 일방적인 적대시 보도가 가져올 결과를 생각할 때, 그 부작용과 불길한 미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한반도 통일(남한에 의한 북한 해방)에 대해 일본이 과연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는 말을 하지 않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방식 차이의 배경에는 종교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미덕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일본(日本)보다 한국내부의 대립(對立) 심각

 

■ 언론의 죄(罪)

 

현재의 한일 갈등은 분쟁의 주체인 양국 정부가 문제를 관리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당국이 어렵다면 다른 접근법이나 관리방법이 필요하다. 창조적 처방을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무관심한 개인도 있을 것이고 무시해도 무방하겠지만 양국 관계 발전에 관심 있는 유지들 사이에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볼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의 공유야말로 진정한 동맹관계로 가는 데 유용한 과정이라고 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사실 한일 갈등보다 남남 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문정권은 일본이나 일본의 우파를 경계하거나 적대하기보다는 자신에 반대하는 한국의 우파를 더 경계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미국 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하기야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을 일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는 무리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갈등을 주로 확대 재생산하는 쪽은 언론이다. 일반적으로는 위안부, 징용공 같은 과거사 문제와 역사 인식에서 주된 갈등이 시작되는 것 같지만, 한국의 보수우파는 전후 일본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이는 양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하면서도 각기 처한 전략적 환경이 현격하게 다른 데서 오는 문제다.

 

 

한일관계는 공통의 동맹인 미국이라는 존재, 즉 강력한 접착제가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양국은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서 미국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사실 역사를 보는 시각만 조금 바꿔도 지금까지 생각했던 20세기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동서냉전 종식 이후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의 좌경화를 지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그리고 지금의 양국 갈등을 동서 냉전 시대에 안보를 위해 동결 봉인된 문제들이 분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일본에서 한국의 독립을 공화제를 위한 건국혁명으로 보는 전문가가 얼마나 될까.

1945년 8월 한국은 과거 봉건역사와 단절하고 미국식 공화제 국가를 세우려 했다. 한국은 일본이 알고 있는 조선과는 전혀 다른 나라를 만들기로 했다. 정치체제는 물론 가치관에서도 특히 그랬다. 그래서 한국의 건국은 건국혁명이라는 것이다. 터키를 이슬람국가에서 세속공화국으로 바꾼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건국혁명을 생각해 보면 참고가 될 듯싶다.

 

 

■ 새로운 국가(國家) 건설로

 

일본은 무의식중에 일본 방식을 한국에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럴 수 없다. 패전 때 일본은 전쟁 전으로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한국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나아갔다. 일본이 평화를 누리는 동안 한국은 전쟁과 함께 성장했다.

한국은 헌법에 병역의무가 명시된 나라다. 또 일본이 겪은 전쟁은 20세기 전반의 전쟁이다. 20세기 후반의 동서 냉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이다. 일본 사회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성공에 이르는 전략과 방법은 물론 하나가 아니다. 국가에 따라, 국가가 처한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 사회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미-중 전쟁이 6·25전쟁의 후반전임을 모르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 일본 사회는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절반은 옳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한국이 발전한 것은 한미동맹으로 국가의 진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인 한국이 일본처럼 의원내각제에서 무난한 인물을 총리로 뽑아 정치를 해왔다면 이른바 압축 성장을 가능케 한 선택과 집중조차 불가능했다. 선진국의 조언을 무시하고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창조적 모색을 통해 성공한 한국이, 지금 일본 사회의 지지를 받아온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등 이른바 민주화 세력들이 주변의 요구에 휘둘려 실패하는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

 

문명사(文明史)의 시점에서 한일관계를 생각하다...

 

■ 일본 불신(不信)의 배경

 

문명사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돌아보면 한국이 국제환경에 어떻게 지배되어 왔는지, 아니면 끊임없이 밀려오는 환경의 변화와 위기, 도전과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기회로 활용했는지, 아니면 기회를 놓치고 위기를 초래했는지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많은 일본인이 일본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의 행동이 원인이 돼 피해를 본 나라들이 보면 일본인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은 한반도에 많은 재산을 남겨 왔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한반도의 북쪽이나 만주에 일본은 거대한 산업 인프라를 남겼다. 만주가 국공내전의 주 무대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에 남긴 것은 6·25전쟁(1차 미중전쟁) 때 거의 모두 파괴됐다. 한반도의 분단과 처참한 전쟁은 일본의 미숙한 종전에 의해 잉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일제 강점 35년의 두 배나 되는 분단 70년 동안 일본이 태평양 전쟁으로 입은 인적 피해의 두 배나 되는 희생을 냈다.

 

이것들이 한국의 반공 보수가 전후 일본을 불신의 눈으로 보는 역사적 배경과 사실이다.

일본은 동서냉전 때 정경분리 및 전방위 외교를 표방했다. 한반도에 대해 남북 등거리를 추구하였다. 일본 사회는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 없음을 몰랐거나 무시했다. 이승만 라인에 반발한 일본은 김일성 체제와 공모해 재일동포들을 적십자 인도사업으로 위장해 대량 북송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6년 전에 시작된 북송 공작은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19년이 계속되면서 북송 희망자가 사라지자 끝났다. 이를 용인할 수 있다고 보나.

 

한일 양국은 1974년 1월 30일 '대륙붕공동개발협정'을 체결(1978년 6월 22일 발효)했다. 그런데 일본은 유엔 해양법 발효를 계기로 이 협정을 사실상 사문화시켰다. 일본은 징용공 문제 등으로 한국이 청구권 협정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난하지만, 한국어민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한일어업협정 파기를 통보했다. 일본(정치와 관료)측의 배신이다. 한국의 보수가 일본을 결정적으로 불신하는 배경이다. 한일청구권협정을 강조하고 싶다면 일본은 '대륙붕공동개발협정'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한국과의 월드컵 공동개최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평양으로 달려갔다.

납치문제 해결에 진전은 없었지만 미국과 상의 없이 방북한 것은 닉슨 쇼크 직후의 중-일 국교정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납치 일본인 구출은 일본의 염원이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생지옥에 9만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보냈다. 한국은 동서 냉전 때는 정경분리를 하지 못했다. 동서냉전 종식 후 정경분리로 중공과의 관계가 확대됐다. 많은 한국인은 한국이 92년 8월 중공과의 국교에서 소련(당시)의 핀란드가 될 것을 우려해 고심하고 있는데도, 남북한 등거리 카드를 중공에게 빼앗겼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일본은 한국을 친중 국가로 매도하며 적대시하고 있다.

 

일본이 전쟁까지 불사하며 지키려는 대만은 마오쩌둥이 대만 침공에 사용할 군사력을 한반도 침략에 소모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무시한다. 한국은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건국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1년 7개월 동안 미국과 함께 전쟁을 벌임으로써 동서냉전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 됐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미국을 대하듯이 한국과도 밀접해야 한다.

 

 

왜 한일관계는 왕래와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도 갈등이 깊어지는가. 이는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만들어진 거짓 이데올로기를 믿기 때문이다. 특히 한일관계를 파탄시키는 것을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중공과 평양 등 공산진영의 프로파간다에 일본 언론이 놀아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국제사회의 진정한 전범국은 중공이다. 중공은 유엔총회가 침략국으로 규정(51년 2월 1일)한 전범국가다. 미-일동맹이 있는데도 유엔중심외교를 표방한 자들은 무의식중에 전범국 중공의 모략공작에 영향을 받았다고 경계해야 한다.

 

도쿄 올림픽 폐회식 때 일본은 원폭 피해 추모를 원했다. 일본의 희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원폭 피해자를 동정하고 이런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을 피해자로 만드는 데는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일본은 유일한 핵무기 피폭국임을 강조하지만 일본은 정말 핵무장을 장차 포기했는가. 국제사회는 평화국가 일본이라는 정치인의 캠페인을 믿지 않는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적 유사성은 크다. 야요이인(弥生人)은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과 조몬인(縄文人)의 혼혈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의 일본인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가족간, 형제간과 같은 양국간의 다툼이 타인과의 싸움보다 더 잔혹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 본보와 제휴하고 있는 일본 '통일일보' 사설을 인용하였습니다.

 

정리 : 김 · 도 · 윤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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